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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청학성당

차를 타고 지나던중 "선교100년" 이라는 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서 후일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선교100년1890년 4월부터 프랑스 선가사 죠조 모세 신부가 이 자리에서 사목했음을 1990년 선교 100주년을 맞아 이 비를세움


전 이걸 보고 "아 프랑스 죠조 신부가 여기에서 선교활동을 했나 보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또 후일 알고 보니 여기가 청학성당 입구 더구요 

비석 오른쪽으로 길이 있는데 조금 들어 가면 청학성당이 나옵니다. 


그래서 또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청학성당잔뜩 구름낀 하늘 밑 청학성당


외형만 봐선 현대적이라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1956년에 신축한 건물이었습니다. 


청학성당 홈페이지에 교회 현역이 있어 갈무리 해 봅니다. 


청학성당은 1890년 모이세 죠조(Moyse Jozeau, 한국명 趙德夏) 신부가 청학동의 절영동성당에 부임하였습니다. 1891년에 초량으로 본당이 이전하자 이곳은 공소가 되었다. 1907년에 공소 경당 및 강당을 건립하였고, 1932년 10월 30일 초대 주임 신부로 김선배[사도 요한]신부님이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청학성당이 되었다 1932년 본당 설립을 승인받아 범일성당에 이어 부산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1956년 12월 현재의 성전을 유럽식 고풍을 그대로 살려 신축하였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이 범일성당이라고 해서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았는데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개 되었습니다. 


범일성당 본당의 태동과 설립


본당은 교세 확장과 교통의 불편으로 2년 후 대청동에 임시 성당을 지어 이전하였고 청학성당은 1932년 새로이 본당으로 승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청학성당 자리는 부산에서 최초로 생긴 천주교 포교소(임시 본당) 자리 였으며  죠조 신부는 부산에 부임한 첫 신부 였습니다. 


그제서야 "선교100년" 비석이 저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죠조 신부님 흉상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1889년 한국에 파견되어 1890-1893 초대 동래(부삭) 본당 사제로 교회창립의 사명을 맡아 이 곳 청학동에 오신 죠조 신부님을 기념하여 이 동상을 세우다.


부산 천주교의 첫 시발점이 영도였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 

당시 울창한 산림으로 은거하기 좋았다고는 하나 영도는 바다사람들도 많고 영험한 봉래산 때문에 무속신앙이 많았던 곳 입니다. 

지금도 그 흔적들은 영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구요 

하지만 죠조 신부가 청학동에 부임한 이유를 국제신문 기사에서 찾을수 있었는데요 


부산 카톨릭 굴곡 이겨낸 청학동, 이젠 미래를 연다  - 국제신문 

죠조 신부가 청학동에 부임한 것은 청학동에 이미 가톨릭 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부 때부터 가톨릭을 믿었던 경주 양반가의 김보윤이 병인박해를 피해 신교의 자유가 있던 일본으로 가던 중 청학동에 은거했다. 김보윤이 선교 활동을 펼쳐 청학동에 있던 여섯 가구와 함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것이 청학동 가톨릭 역사의 시작이다. 이처럼 가톨릭 박해와 청학성당의 역사는 궤를 같이한다. 박해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영도가 안전한 섬이었던 점이 가톨릭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었던 셈이다. 


낮선 남의 땅에서 선교를 시작하기에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있던 영도는 큰 힘이 되었을 것 입니다. 

우리나라 굴곡진 근현대사를 같이 했을 청학성당 들려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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